주역-선천 팔괘 낙서(落書) 배움의 터(學習空間)

● 持其端而不失焉者 敬義而已

마음의 작용은 실로 위대하다.
천지를 얽어 짜고도 남음이 있고
실오라기 만큼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천지도 또한 능히 그 상량을 안지 못한다.
잘 활용한 사람은 요임금, 순임금이었고
하나라의 우임금, 은나라의 탕왕, 주나라의 문왕이었다.
잘 보전한 사람은 공자, 안자, 자사, 맹자였으니
정치에 적용하여 실천하고
문장으로서 그를 기술했으니
이에 그 작용을 진실로 재화로 삼은 예다.
숨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위대함은
그윽하고 아득한 침묵의 경지만이 아니요
해와 달보다도 밝고 귀신보다도 더 성대하다.
그러므로 이 또한 우리의 마음에서 구할 바이니
선한 말을 듣고 선한 행동을 보면
말미암아 하고자 함이 바로 참 마음의 단서다.
그 단서를 가지고 잃지 않는 것은 敬과 義일 따름이니
항상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항상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心之用大矣
經綸天地而有餘力 無絲毫之或漏於其外也
是天地亦不能包其量矣
善用者 二帝三王是已
善保者 孔顔思孟是已
行之以政事 述之以文章
於是乎其用也費矣
其隱而不可見者
又非窈冥昏黙之地也
昭乎日月也 盛乎鬼神也
其亦救之方寸間而已矣
聞善言 見善行 油然而生者 心之端也
持其端而不失焉者 敬義而已
其拳拳焉 其拳拳焉
○ 선천 팔괘를 낙서에 배합시킨 그림-청나라 陳夢雷


낙서의 수는 홀수가 正方이고 짝수는 모서리에 자리잡았다. 양이 높음을 나타낸다. 괘로서 배합하면 각기 그 부류를 쫓았다. 乾은 純陽으로 9에 배합됐으니 구는 양의 끝(極)이다. 하도의 방위에서는 2·7의 자리다. 2와 7이 합해지면 9가 되지 않는가? 그러므로 (건의 효사에서) 乾은 用九로 말하였다.
坤은 乾에 짝이 되는 純陰이다. 그 짝은 1이 된다. 陽은 넉넉하나 陰은 부족하다. 또한 河圖는 天一의 기본 자리다. 구일로서 수의 마지막과 시작을 나타낸다. 乾·坤으로서 괘의 음과 양이 정해지면 여섯 자녀괘들이 고르게 늘어선다. 乾一이 坤과 사귀어 震을 얻는다. 그러므로 乾의 다음이 震이다. 낙서 그림의 숫자로는 9의 다음인 8이다.
또 乾이 坤과 사귀어 坎을 얻는다. 그러므로 震의 다음이 坎이다. 낙서 그림의 숫자로는 8의 다음이니 7에 해당한다.
다시 乾이 坤과 사귀어 艮을 얻는다. 그러므로 坎의 다음은 艮이다. 낙서 그림의 숫자로는 7의 다음인 6이다.
이로써 三男의 자리가 정해진다.
坤이 乾과 사귀어 처음 얻는 괘상은 巽이다. 그러므로 坤의 다음은 巽이다. 낙서 그림의 숫자로는 一의 다음이니 2다.
다시 乾과 사귀면 離를 얻는다. 그러므로 巽의 다음은 離다. 낙서 그림의 숫자로는 2의 다음인 3이다.
다시 세 번째로 乾과 사귀면 兌를 얻는다. 그러므로 離의 다음은 兌다. 낙서 그림의 숫자로는 당연히 4가 되고 3의 다음이다.
이로써 삼녀의 자리가 또한 정해진다.
다시 전체의 괘상을 전개되는 순서로 종합하면 乾一·兌二·離三·震四·巽五·坎六·艮七·坤八이 된다. 반면 낙서 그림의 차례로서 짝을 지워 말하면 乾九·震八·坎七·艮六·坤一·巽二·離三·兌四다.
이는 하나가 괘의 발생에 따라 그 數를 얻은 결과고, 하나는 數의 자리에 따라 그 괘를 차례지어 나타낸 그림이다.


○ 선천괘를 하도에 배합시켜 본 그림-청나라 陳夢雷
이치는 하나일 뿐이다. 하나이면서 둘이 된다면 乾과 坤이다.
둘로서 넷이 되면 乾이 離를 얻고 坤이 坎을 얻는다.
넷으로서 여덟이 되면 乾이 兌와 離 震을 얻고 坤이 艮과 坎 巽을 얻는다.
(8괘의 배치에서 왼쪽의 양이 자라나는 괘상들은 乾이 얻는 兌와 離 震이고 오른쪽에서 음이 자라나는 괘상은 坤이 艮과 坎 巽을 얻는 영역을 뜻한다.)
乾과 坤은 하나에서 움직이니 離와 坎은 乾과 坤을 계승하여 번갈아 작용한다.
兌·震·艮·巽은 離 坎의 작용을 묘하게 한다.
乾과 坤의 자리가 바르면 離 坎의 자리가 바르고 離 坎의 자리가 바르면 8괘의 자리가 바르다.
그때 坤은 북쪽에서 하나에 짝을 지을 수 있으니 6은 무엇인가? 하나는 수의 시작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시작은 여섯이다. 그 까닭에 여섯이 이를 이룬다. 중심되는 바는 하나에 있다. 하나는 陽이다.
陽에 해당하는 하나는 乾의 象이요, 坤의 象이 아니다.(하도에서 북쪽의 자리가 1·6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곧 坤은 능히 스스로 만물을 낳지 못하며 乾에서 생겨난다. 이로서 건은 방위가 북쪽이다. 그런데 건이 남쪽에서 2·7과 짝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2는 일의 짝이다. 또한 만물을 낳는 수다. 곧 중심은 2에 있다. 그는 陰이다.
陰에 해당하는 둘은 坤의 象이오, 乾의 象이 아니다.(하도에서 남쪽의 자리가 2·7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곧 坤이 스스로 만물을 능히 낳지는 못하지만 坤에 의지하여 생겨난다. 이로써 방위가 남쪽이다. 하도에서도 그 까닭에 乾이 남쪽이고 坤이 북쪽으로 하늘을 법받았기 때문이다.
하늘은 陽이 남쪽이고 陰이 북쪽이다.
離는 동쪽이고 3·8을 짝으로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늘은 3이 木을 낳고 땅은 8을 완성해서 火가 木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坎은 서쪽이고 4·9와 짝을 이루는 까닭은 무엇인가? 땅 4가 金을 낳고 하늘의 9가 이를 완성해서 水가 金을 낳기 때문이다.
乾·坤·坎·離 4괘 正位이고 하나의 經과 緯를 이룬다. 그 자리에 거처하지 않고 스스로 낳는 바 자리에 위치하니 이름이 선천이다.
震·兌·艮·巽이 4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乾·坤·坎·離의 정해진 자리로서 위치하기 때문이다. 陽의 운행은 남쪽으로부터 북으로 간다. 陰의 운행은 북으로부터 남으로 움직인다. 南은 老陽이 되고 乾이 거처하고 있다. 건의 상효가 변하면 兌가 되니 태의 자리는 東南이다.(陽은 아래로부터 자라면서 올라가고 陰은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자라난다.)
중간효가 변하면 離가 되고 동쪽에 위치한다. 두효가 함께 변하면 震이 되고 동북쪽에 거처한다.
북쪽에서 지극해지면 乾효가 모두 변한다. 北은 老陰이 되니 坤이 이곳에 자리잡았다.
坤의 上爻가 변하면 艮이 되고 위치는 西北이다.
중간효가 변하면 坎이 되고 위치는 西다.
두효가 함께 변하면 손이 되고 위치는 서남이다.
남쪽에서 변화가 지극해지면 坤卦가 모두 바뀐다. 음과 양은 서로 갈마들면서 번갈아 끝과 시작을 이룬다. 8괘의 자리가 바르면 삼라만상이 나열되고 그러므로 乾·坤·離·坎등의 8괘가 바르다.
잡괘전과 선유들의 잡괘전 해설,

乾剛坤柔
건은 강하고 곤은 유하고
곤(坤)으로부터 곤(困)에 이르기까지 오직 곤(坤)이 스스로 하나의 괘가 된다. 나머지는 두개의 괘를 하나로 여겨 모두 15괘가 소단락이 된다. 뒤도 마찬가지다.(전체가 30괘지만 도전괘는 둘을 하나로 여긴다는 뜻)
건(乾)은 머리가 되니 하늘은 포함하지 못함이 없는 까닭이다. 뒤의 나머지 부도전괘들 8은 꼬리가 된다.
比樂師憂, 臨觀之義, 或與或求.
屯見而不失其居, 蒙雜而著.
비는 즐겁고 사는 근심한다.
임과 관의 뜻은 혹 주고 혹 구한다.
둔은 나타나되 그 처소를 잃지 않고,
몽은 섞이되 나타난다.
위의 상경으로서 머리에서 일어나는 여덟괘다.
震起也, 艮止也,
진은 일어나며 간은 그친다.
이 두괘는 대과·이(頤)와 더불어 앞괴 뒤에서 착종하며 서로 마주보는 관계다.
損益盛衰之始也.
손과 익은 성하고 쇠함의 시작이다.
앞의 수지비괘로부터 여기까지 괘가 열개이니 하경의 두괘인 이들이 지도리가 된다.
大畜時也, 无妄災也.
대축은 때요 무망은 재앙이다.
상경 두괘, 하경 두괘로서 정반대의 배합괘다.
萃聚而升不來也,
취는 모으는 것이고, 승은 오지 않는다.
謙輕而豫怠也. 噬嗑食也, 賁无色也,
겸은 가볍고 예는 게으르다.
서합은 먹는 것이요 비는 색이 없다.
상경의 4괘다.
兌見而巽伏也.
태는 나타나는 것이고 손은 엎드림이다.
이 두괘는 아래의 리(離)·감(坎)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심 마디가 되어 위 아래의 괘들이 서로 짝으로 합해지는 위치에 해당된다.(위의 상경 네 개, 아래의 상경 네 개로 중심 자리다.)
隨无故也, 蠱則飭也. 剝爛也, 復反也.
수는 연고가 없고 고는 경계한다.
박은 헤어짐이고 복은 돌아옴이다.
상경의 4괘다.
晉晝也, 明夷誅也, 井通而困相遇也.
진은 낮이요 명이는 베는 것이다.
정은 통하고 곤은 서로 만난다.
하경의 네괘다. 건·곤(乾·坤)으로부터 여기까지가 무릇 30괘다. 상경의 수에 해당하며 그 안에 하경의 12괘가 속해 있다.
咸速也, 恒久也,
함은 빠른 것이요
항은 오랜 것이다.
함(咸)으로부터 아래의 송(訟)에 이르기까지 모두 26괘다. 그러나 부도전괘인 소과·중부·이·감은 각기 하나의 괘상이고 도전 관계에 있는 나머지는 두개의 괘를 하나로 삼아 15괘가 된다.
渙離也, 節止也. 解緩也,
蹇難也. 睽外也, 家人內也,
환은 떠나는 것이요 절은 그치는 것이다.
해는 늦춘 것이요 건은 어려운 것이다
규는 밖이요 가인은 안이다.
하경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여덟괘다.
否泰反其類也.
비와 태는 그 류를 반대로 함이다.
함괘로부터 여기까지는 모두 10괘다. 상경의 이 두괘가 하경의 지도리가 된다.
大壯則止, 遯則退也.
대장은 그침이요 돈은 물러감이다.
하경과 상경의 정 반대가 되는 두 괘들이다.
大有衆也, 同人親也,
대유는 무리요 동인은 친함이다.
革去故也, 鼎取新也,
小過過也, 中孚信也. 豐多故也, 親寡旅也,
혁은 옛 것을 버리는 것이요
정은 새로운 것을 취함이다.
소과는 지나는 것이요 중부는 믿음이다.
풍은 연고가 많고 친한 것이 적은 것은 나그네다.
하경 6괘다.
離上而坎下也. 小畜寡也, 履不處也.
需不進也, 訟不親也.
이는 오르고 감은 내림이다.
소축은 적은 것이고 이는 처하지 아니하다.
수는 나가지 않는 것이요 송은 친하지 않다.
상경 6괘다.
大過顚也, 姤遇也, 柔遇剛也.
漸女歸待男行也. 頤養正也,
旣濟定也. 歸妹女之終也, 未濟男之窮也.
夬決也, 剛決柔也, 君子道長, 小人道憂也.
대과는 넘어짐이요
구는 만남이니 유가 강을 만남이다.
점은 여자가 시집가는 것이니 남자를 기다려 감이다.
이는 바른 것을 기름이요
기제는 정해짐이다.
귀매는 여자의 마침이요
미제는 남자의 궁색함이다.
쾌는 결단함이니 강이 유를 결단한다.
군자의 도는 자라나고 소인의 도는 사라진다.
함(咸)·항(恒)으로부터 여기까지 모두 34괘다. 하경의 수에 맞는 배치이고 안에 상경 12괘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건과 곤이 머리가 되고 대과 이하가 꼬리다. 그 가운데 나머지 괘들을 나누어 변화·조응·기복의 이치에 맞게 열거하면서 나머지를 거느리는 배치가 매우 정연하지 조금도 문란하지 않다. 배우는 이들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序卦는 차례는 있으면서 섞여 있지 않다. 학문의 시작이고 차례를 밟아 나감에 절제가 없을 것을 염려한 결과다.
雜卦는 비록 섞여 있으나 질서가 있다. 학문의 완성이다. (잡괘를 기술한 의도는) 사람이 어느 한 구석에 막혀 통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잡괘 한편에는 어느 법마다 갖추어지 않음이 없고 뜻마다 포함하지 않는 말이 없다. 대개 그 안의 말들이 사람의 일을 근거로 기술되고 있으나 근본은 乾·坤이다. 그것은 吉凶·消長의 이치, 進退·存亡의 도리로 하나라도 천지간에 있지 않음이 없다.
수지비괘로부터 그 아래의 8괘는 (수지비, 지수사, 지택림, 풍지관, 수뢰둔, 산수몽, 중뢰진, 중산간) 하경의 산택손과 풍뢰익으로써 지도리가 되니 그 가운데 근심하고 즐거워하며 구하거나 주는 뜻이 모두 인정의 대강이다.
마지막에 택수곤이 위치한 까닭은 강이 가려져 덮이는 괘상이기 때문이니 불가불 양을 붙들어 지탱해야 함을 보여준다.
택산함괘 이하 8괘는 (택산함, 뇌풍항, 풍수환, 수택절, 뇌수해, 수산건, 화택규, 풍화가인)
상경의 천지비와 지천태로써 지도리를 삼는다. 그 가운데 항구하고 신속하며 새롭고 낡은 것은 모두 사람 일의 일상적인 대강이다.
마지막에 택천쾌로서 배치되어 있음은 강이 유를 결단했음을 말한다. 불가불 음을 억제해야 함을 보여준다.
내가 또 그 가운데를 나누어 두 소단락으로 하였으니 억지로 안배하여 구분한 설이 아니다. 상경 18괘 하경 18괘의 설을 쫓아서 나눈 것이다.
앞이 건괘가 됨은 세상의 만물은 하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만물이 하늘을 힘입어 비롯됨이니 굳세게 운행하면서 쉬지 않는 이치를 반영한 결과다.
마지막은 택천쾌괘로서 마쳤으니 쾌괘에서 유를 결단하면 건으로 간다. 사람이 하늘에 합하는 도리를 배우게 하려는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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