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목민아카데미에서 만난 대한민국 경제거탑 백영훈 한국 최초경제학박사 좋은 글




같은 이야기에
세번째 감동의 눈물을 주룩 주룩 흘린 이야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꼭 들어야하고
잊지말아야할 대한민국의 비사
(悲史, 秘史)
- 구리시 목민 아카데미에서 -



[목민 아카데미에서 강의하시는 백영훈 원장]


듣고 또 들어도 감동이다.
나는 오늘 우연히 카메라를 들고 와서 정말다행이다.
내가 태어나서 이토록 같은  이야기에 세번씩 눈물을 흘려본적인 이 이야기가
유일무이하다.

10년이 더 지난 어느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사람의 모습을 한 독일인!
할머니가 되어서 이제 거동이 어려운 분이지만,
그래도 동양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보면서,
내 손을 잡으면서 아무말 없이 눈물을 흘쩍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할머니가 고향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시나?
그것은 아니다.
그 분은 분명 고향의 발전된 모습을 눈에 그리며, 고향에서 온 젊은 한국여인을 보고 우신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다른곳으로 이동을 하기위해 기다리는 시간에
자신이 독일에 온 최초의 간호사였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이제 살기 좋아졌죠? 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또 눈에는 눈물이 서린다.

왜? 왜?
으아스럽게 쳐다보는 나에게 드디어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졌다.

아마도 1964년 - 1965년의 일이라면서....
자신들이 독일로 간호사로 취직하게 된 배경과
고 박정희대통령과 고육여사께서 독일로 타고올 비행기가 없어서
독일에 비행기를 빌려서 왔던 이야기,
자신들을 만났을 때 서로 부둥켜안고 몇 시간을 울였던 이야기,
박통께서 달려오는 광부들을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해서 서로 울던 이야기 ~~~

나는
지금은 성함도 잊어버린 그 할머니를 통해서
우리 한국이 그토록 힘들고 어려웠던,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에서 있었던 사연들을 들으면서
할머니도 울고, 나도 울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우리를 쳐다보면서 이상히 여겼지만,
그렇게 울면서 들은 대한민국 건설의 비사였다.

그 이야기를
어느해 홍천 대명콘도에서
 라이온스 354-c지구 임원교육 행사에서
초대되어온 강사셨던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께서
그 당시의 독일차관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독일에서 만났던 간호사 할머니의 말씀을
그 자리에서 증명을 해 주신 것이였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면서 "백영훈 원장"의 말씀을 들었다.
주변에 계신분들은 아마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모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2011.  11. 10일
구리시청 목민아카데미에서 "백영훈 원장"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아직 건강하게 우리앞에 나타나 주신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대한민국 경제건설의 주역이자
대한민국 발전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모두가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듯이
나도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의 위대함을 더욱 더 알게 되었고,
그 토록 가난하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안에
세계의 경제대국이 되었는지 자랑스러울 따름이였다.

그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숨은 애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사 만큼이나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하신 분들이 계신다는 것을 ~~~~~

우리가 오늘 이렇게 혜택을 받고
세계인들에게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분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秘史, 悲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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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훈 원장의 강의를 정리해 본다 ]

1961년 대한민국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박정희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그 당시 사회는 급변하고 있었고, 한국은 6.25 전쟁이 끝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국은 가난의 천국이였을 때다

박정희정권이 집권을 하자마자, 미국은 한국에 경제원조를 끊어버리고
한국의 국고의 달러는 2,000만불도 없던 시절이였다.

박정희대통령께서 13명의 수행비서들을 거느리고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께 경제원조를 부탁하러
도미하였으나, 그 당시 캐네디 대통령께서는 일어서지도 않으시고,

"당신 옷 벗고 군대로 돌아가라! " 라고 한 마디 내뱉었을 뿐이였다고
 함께 수행하셧던 분들이 전하였다.
고박대통령과 13명의 수행원들은 밤을 새워 울었다고 한다.

그들은 빈 손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왜 미국이 한국 군사정권에 경제원조를 거절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 당시 동남아 일대가 정치가 부패하여 한국 군사쿠데타가 집권에 성공을 하면
그것이 한 사례가 되어, 주변국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고박정희 대통령께서는 다른 우방국들에게 경조원조를 의뢰했으나, 모두 거절을 했다.
아마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고, 한국을 불신하고, 국가 신용도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였다.

그때
고박대통령께서 독일로 경제원조를 부탁하기 위해 "신영훈 장군을 대사로 임명"하여
독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파견된 분들 중에서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서
급히 한국에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문교부를 통해서 찾았다.

그 사람은 바로 오늘 우리앞에서 강의를 하시는 "백영훈 원장"이였다.

당시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병력기피자 소탕 작전"이였고,
독일 유학을 갔다와서 군대를 다녀오지 못한 "백영훈 원장"께서
당시 중앙대 부교수로 역임을 할 때 느닷없이 입대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논산 훈련소에 입대를 하여, 훈련을 받고 있는 훈련병의 신분이였다.
그런데 상부로부터 지시가 떨어져서 논산훈련소에 있는 백원장을 찾아 데리고 간 곳은
남산 중앙정보부 사무실이였고, 그 당시 정보부장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셨다고

그곳에서 그 유명한 대한민국 경제건설백서인
"대한민국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고 한다.

왜?
독일에 원조를 받기위해서 서류가 필요했기 때문에......
독일 유학생 1호이자, 독일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으신,
한국 최초 1호 경제학 박사이신 백원장은 모든 학연이 아무래도 독일인들이기 때문에...

당시 정래혁상공부장관이 경제사절단 단장으로 파견되었는데,
백영훈원장께서는 상공부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임명이 되어 독일로 파견되었다.
당신 신분은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 보(훈련병의 신분)이였다.

*  정래혁 장군은 1926년 전남 곡성, 국방부장관역임,

그러나
독일경제부 장관은 한국의 경제사절단을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백원장께서 당시 "에드워드 독일 경제부장관"댁을 일주일을 울면서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 결과
독일 경제부 차관께서 미팅을 하자고 해서 만나보니
한국에 "3,000만달러" 차관을 결정하는데, 조건이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된다고
약속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만큼 한국의 사정은 분리했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생겼단다.
바로 "3,000만달러 차관에 대한 지급보증서"가 있어야 했다.
한국에서 홍콩으로 급파하여 많은 외국계 은행들에게 지급보증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을 당했다.
왠냐하면 한국이 국가신용도가 없었기 때문에 어느곳도 믿고
 지급보증을 해 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급보증이 없어서 차관을 쓸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
경제사절단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백원장께서 독일에 20여일 더 머물고 있을때
학교 동창생들이 찾아와 사연을 물어서 "지급보증"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단다.
독일 노동부에 근무하던 백원장의 동창생이
독일에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파견할 수 있는냐고 했단다.

그래서
한국으로 긴급연락을 하여
전국에 모집을 하게 되었고, 5,000명 모집에 28,000명이  응시를  했고,
간호사 2,000명 모집에 18,000명이  응시를  하여 독일로 보내졌다.
당시
비행기 1대에 약 150명이 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7,000명의 탄광의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로 급파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한국의 기적이다.
그들의 3년 노동 계약서를 담보로 "독일 은행에서 지급보증"을 하여
대한민국에 3,000만불 차관을 성공시키게 된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그 탄광에서 일하신 광부와 시골병원에서 시체를 닦으면서 눈물을 흐리던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건설되는 모토가 만들어 진 것이다.

내가 독일에서 만난 그 할머니가 바로 이때 독일로 파견되어
한국으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바로 그 간호사중의 한분이였다.


그때  광부들이 1,000m 지하에서 일하는 모습과
시골 병원에서 시신들을 닦는 모습이 독일 방송에 방영되면서
전 독일인들을 감독 시켰다.

그때 그 간호사의 혜택을 받았던 독일인 국회의원이 요청하여
15명의 국회의원이 대정부에 건의안을 내 놓아서 "한국을 돕자"라 하여
1964년 12월 5일 독일 정부는 드디어 대한민국 대통령을 독일로 국빈 초대 한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가난했던 대한민국에는 국빈자격으로 초대를 받았지만,
타고갈 전세기가 없었다.

당시 중앙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백원장을 고 박정희대통령께서 다시 불러서 가보니,
독일에 가서 전세기를 빌려 보라는 명이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러나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였다고..


그때 전세기를 빌리러 3분이 파견되었다.
당시 독일에서 유학을 하신 분이 대한민국에 3분이 계셨는데
한분은 동아일보 사장이셨던 " 최두선" 그리고 또 한분은 "안호상 박사"

독일에 가서 박대통령 친서를 전달하고
전세기를 빌린다는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차마 말을 할 수 없어서
통역이셨던 백원장께서 직접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직접 대답을 듣지 못하고 "가서 기다려 보라"
그렇게 돌아왔다.

1964년 12월 5일 역사의 날이 왔다.
대한민국 건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정식 국빈초대로 나가시는 날이다.
그래도 독일에서 김포공항으로 전세기를 보내어서
36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독일을 향할 수 있었다.

그때 독일 공항에 도착하니, 수백명의 인파가 대한민국 대통령 환영에 나왔다고
그들은 바로 독일인들이다.
간호사들의 친절의 혜택을 받은,,,,,

간호사들도 울었고
광부들도 울었다.
고박정희 대통령께서도 울으셨다.
아니 통곡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라고  전한다.

독일인들의 함성
" 간호사 나라 대통령 만세, 코리아 엔젤 만세 ! "

대한민국 애국가가 울러 퍼지지만,
모두가 목이 메여 누구하나 따라 부르지 못하고 울먹거리고 있었고  ~~~~

고 박정희대통령께서 써 가지고 간 연설문은 읽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염없이 울으셨단다.
독일에서 만난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


그  현장에서 울으셨던 독일인 할머니가 나에게 그날 일을 일러주시며
세월이 40연이 흘렀는데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또 울으셨다
듣는 나도 울었다.
나는 감동의 눈물이요, 존경의 눈물이다!


그때
간호사들은 고육영수여사를 "어머니, 어머니 나 데려가 주세요 ! "
치마자락을 잡고 매달리며 울었다고 했다.

독일을 떠나 올때 대통령이 떠나는것을  보고,
대통령이 타고 오는 차를 울면서 뛰어 오는 것을 보고,
창문 밖으로 손을 내어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는 것을
독일 대통령이 직접 손수건으로 고박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을 우리 독일이 도와줄테니 힘을 내라고.....

그래서 우리는 경제를 건설할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고,
5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고. 세계가 한국학 배우기에 열을 올리는 시대가 되었다.




대한민국을 돌아 보자!
1905년 을사조약체결 - 대한민국 문서를 외국에 내어주는 비극
1910년 한일합방 - 조선왕조 몰락
2010년 한일합방의 100년 되는 해
2011년 새로운 100년이 시작 되는 해

우리는 1945년 식민지에서 독립을 했고,
식민지에서 독립된 나라가 147개 국이지만,
유일하게 국민소득이 1인당 2만불이 넘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 뿐이다.

대한민국 세계 인구 비례는 0.075%이고,
2010년 4,900만달러 수출국이고 세계 7등 수출 강국이 되었다.
아프리카 48개 나라 전체  수출량의 2배가 된다


17-18세기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했고
19-20세기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했다.
구라파 군주국의 부패에 식상한 구라파인들이 탈출하여 만든 나라가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의 하바드대 설립자는 영국인이다!


21세기는?
바로 아시아 태평양 시대가 열린다.
아시아 태평양의 일본, 중국, 인도, 한국이다.

폴케이트 경제 학자가 일본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21세기 세계의 주역은 바로 "대한민국"이다라고 일본에서 단언했다.

어쩌서!
3가지 조건으로 정리를 했다
첫째는  사회의 도덕성이 있는 나라 
도덕성은 종교에서 나오고, 종교를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일본은 잡신을 믿는 나라고, 중국은 공산국가라 종교가 없다.

둘째는  혼이 있는 나라
한국은 모두 혼이 살아 있다, 문학에도 혼이 담겨 있고, 예술에도 혼이 담겨 있다.


세째는  자유민주주의 나라
일존은 군주주의, 중국은 사회주의




앞으로 대한민국이 세계를 책임질 나라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세계인들은 한국을 배우러 한국으로 몰려 들것이다.

농어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들어오는데 다른 나라는 150년이 걸리는데,
한국은 50년으로 달성을 하였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오늘의 한국을 건설한 저력인들 국미들이 사는 나라다!





[ 한국학을 배우는 이유 ;  대한민국의 저력  ]

첫째의 저력 :  문화의 독창성
한국은 바로 가난의 한이 있는 나라다, 모두가 잘 살려고 70%가 고향을 떠나서 사는 나라다.
추석이나, 구정 명절에 2,000만 민족 대 이동을 하는 나라다

한국 정신이 있는 나라다.
영어사전에 한국 정신을 "불가능은 없다"로 등제 되어 있다.

그리고 신바람 문화가 있다.
모두 함께 똘똘뭉쳐서 새마을 운동으로 잘살기 운동을 성공 시킨 나라다.

둘째의저력 충효사상이 살아 있는 나라
한국은 가정의 경쟁력이 있는 나라다.
가정의 경쟁력은 어머니의 힘이고,

1) 한국 어머니들은 화합의 정신이 있다.
2) 한국 어머니는 포용력의 능력으로 리더쉽이 있다.
3) 한국의 어머니는 희생정신이 있다.

세째 교육열
한국 가정의 교육비 지출은 약 35.7%
해외 유학생이 70만 시대다.

네째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다.

다섯째 젊은이의 충성심
500만의 붉은 악마에 세계가 놀랐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대한민국 화이팅!!

[목민 아카데미는 구리시가 구리시민들을 위해서 ]


덧글

  • 뿌리깊은나무 2011/11/12 08:53 # 삭제 답글

    음...그럼..대단한 나라인뎅...간혹..아주...간혹...답답한 나라이기도 하지요 ^^;;

    누이가 쓴...글이면..참..누이는 대단한사람...ㅎㅎㅎ 요즘 글보면서 눈물 글썽인 적이 없는디...누이글 보면서...가슴이..찡하넹....ㅠㅠ;;;;

    잘보고갑니다..ㅎㅎㅎ
  • 2011/11/12 21:53 # 답글

    난 이분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운이였답니다
    이렇게 사진도 찍어서 남겨두었으니 말입니다.

    가슴이 좀 찡한 이야기지요!
  • 스마일 2013/03/20 09:55 # 삭제 답글

    감동깊은글 이네요~~
    가슴이 찡하는 이런사실를 모르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 석류 2013/03/24 16:17 # 삭제 답글

    대한민국 만세!!!

    "불가능은 없다"

    가장 한국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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